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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이근안, 끝내 사과 없이 사망…역사의 아픔 되새기다

핑크라이궈 2026. 3. 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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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 탄압의 어두운 그림자,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고문을 자행했던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고 김근태 전 의원을 비롯해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에게 물고문, 전기고문 등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문을 가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민주화 운동 탄압의 어두운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피해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고문도 예술'이라 칭했던 그의 오만함

이근안 전 경감은 자신의 잔혹한 행위를 '예술'에 비유하며 고문을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10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문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또한, 출소 후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듯 보였으나, 그의 자서전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애국'이었다고 주장하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실체 은폐와 자수, 그리고 엇갈린 평가

이 전 경감은 '불곰', '박 중령'과 같은 가명 뒤에 숨어 활동하다 1988년 언론 보도를 통해 실체가 드러나자 사표를 내고 잠적했습니다. 이후 10년이 지나 자수하여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그의 자수는 과거사 반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그의 지속적인 자기 합리화 발언은 이러한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끝내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생을 마감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습니다.

 

 

 

 

영화로 재조명된 고문의 참상

이근안 전 경감이 자행했던 고문의 참상은 영화 '남영동 1985'를 통해 대중에게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영화는 고 김근태 전 의원이 겪었던 처절한 고문의 기록을 생생하게 재연하며, 당시 민주화 인사들이 겪었던 고통을 스크린에 담아냈습니다. 물고문, 전기고문 등 잔혹한 고문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역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인권 유린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사과 없는 죽음, 남겨진 상처들

이근안 전 경감의 사망은 그가 평생 동안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과 없이 마무리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의 행위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이었으며, 수많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역사는 그의 죄를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인권의 소중함을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끝나지 않은 역사, 사과 없는 죽음의 무게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상처와 역사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사과 없이 마무리된 그의 생은 우리에게 인권의 중요성과 과거사 청산의 과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이근안 전 경감 사망 관련 궁금증

Q.이근안 전 경감은 어떤 인물이었나요?

A.이근안 전 경감은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인사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했던 인물로 '고문 기술자'로 불렸습니다.

 

Q.그는 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A.그는 고문을 '예술'에 비유하며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고, 자서전에서는 자신의 행위가 '애국'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Q.피해자들에게 사과했나요?

A.아니요, 그는 끝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은 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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